Fragments.
preserved from Midnight Hour
흰담비 씨는 저를 좋아합니까?
좋아하죠, 당연히.
그렇다면 제가 당신의 연인이 될 수 없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여자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기상 시각 사택의 기온은 낮다. 일반적인 인간 개체의 기준으로도 낮은 편이다. 여자는 아침에 일어날 때면 늘 이불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으므로. 추워요. 여자가 잠결에 그런 말을 흘릴 때면 그는 늘 똑같이 답했다. 아닙니다. 현재 기온은 이십일 도씨로, 흰담비 씨가 취침 전 맞춘 에어컨의 기온입니다. 그 말에 여자 또한 똑같이 답했다. 원래 일어날 때면 춥게 느껴지고 이불 덮으면 따뜻한 게 최고인 거예요…. 그로썬 이해되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소리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일반적이라는 말 또한 논리적이지 않았다. 그의 사택에서 아침을 맞이한 인간 개체는 한 명 뿐이었으므로.
기름을 두 바퀴 둘러 계란 두 개를 구웠다. 여자는 늘 기름을 두 바퀴 이상 두른 뒤 뒤집지 않고 오래 구워 바삭바삭해진 반숙을 선호했다. 여자가 그러했듯 노른자를 터뜨려 밥에 비볐다. 바삭한 계란 흰자가 입 안에서 부서졌다.
운전대에 힘을 최대한 주지 않았다. 힘을 조절하기 어려웠다. 출퇴근 길의 운전은 늘 여자의 몫이었다. 그가 운전대를 두 번 부러뜨린 뒤 다시 나타난 여자는 면허를 땄다며 당당하게 운전면허증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 뒤로 그는 한참 운전대를 잡은 적이 없었다.
점심 후 카페에서 구매한 음료는 쿠키쉐이크였다. 여자가 늘 주문하던 메뉴였다. 쿠키 조각이 입 안에서 씹히는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음료를 마실 때면 여자의 입이 조금씩 우물거렸다. 여자는 입이 작은 편이라 음료를 전부 마시는 데에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자가 그러했듯 음료를 입에 머금은 뒤 쿠키 조각을 씹었다. 알갱이가 잘게 부서졌다.
퇴근 후 디비디 플레이어로 재생할 영화를 고르지 못했다. 선택은 늘 여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모르는 기호를 맞추려 애쓰며, 그러면서도 여자 본인의 취향을 벗어나지 않도록. 가장 마지막으로 여자와 함께 보았던 영화를 틀었다. 오늘로 정확히 쉰한 번째의 재생이었다.
주인없는 방의 기온과 에어컨의 설정된 온도를 확인했다. 여자가 늘 맞춰놓고 취침하던 기온이었다. 불을 끄려다 말고 방의 책상 한구석에 놓인 짙푸른 손목시계 옆 실팔찌를 집어들었다.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증명된 사실입니까? 사실 끊어진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흰담비 씨가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끊어지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루어지는지 아닌지.
그렇게 말했음에도 막상 잘 차고 다니지 않아, 여자의 팔찌는 조금도 닳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늘 방의 청결을 유지했으므로, 먼지 또한 묻지 않았다. 팔찌 한쪽을 쥐고 반대편에 검지를 걸었다. 이대로 당기면 끊어질 터다. 그에겐 조금의 힘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고 했나.
그렇다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당신이 눈을 뜰까.